광주에 사는 직장인 한모씨(35·여)는 지난 2일부터 계속 집에서 쉬고 있다. 올해 1년치 연차를 한꺼번에 신청했기 때문이다. 한씨가 연차를 몰아쓴는 이유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우려로 첫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이 계속 미뤄지면서 당장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한씨는 “친정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시고 시부모님도 멀리 여수에 계시기 때문에 아이를 돌봐달라고 부탁드릴 형편이 아니다”면서 “사용가능한 연차휴가를 모두 쓰고 있기 때문에 여름 휴가는 고사하고 집안에 무슨 일이 터지면 정말 큰 일”이라고 하소연했다.

한씨처럼 코로나19 여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정이 많아지고 있다. 초·중·고교의 개학이 연기되고 유치원과 어린이집 등도 줄줄이 휴원하면서 맞벌이는 물론 외벌이 가정에서도 육아에 따른 고충이 커지고 있다. 어린 자녀를 키우는 집에서는 당장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고, 매출이 반토막 난 자영업자들은 텅 빈 지갑만 쳐다보며 생계를 걱정하고 있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개인 연차나 재택근무 등으로 버티기에는 한계에 도달했다는 아우성이다. 이들은 정부와 지자체가 감염병 사태에 대비한 중장기적 돌봄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전문가들도 사태 장기화에 대비해 범사회적인 돌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코로나19와 같이 감염병이 전국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될 경우 아이들의 근본적인 안전을 위해 가칭 ‘맞벌이 가정 휴가제’ 등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연월차 사용도 눈치보지 않고 할 수 있도록 정부가 사업체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업주부 사정도 마찬가지다. 어린이집은 물론 동네 놀이방조차 문을 닫으면서 매번 아이들 끼니를 챙기고 학습을 돌보면서 집안 일을 하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한창 뛰어 놀아야 할 아이들을 집안에 가두고 하루종일 씨름하다보니 몸도 힘들고 정신도 지치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다음카카오 포털의 한 맘카페에는 ‘힘들어도 개학해서 불안한 것보다는 낫다. 아이들 생각해서 조금만 참을 수밖에…’, ‘워킹맘인데 일을 아예 그만 뒀다. 긴급 보육하는데 보내는 것도 불안하고,막상 맡길 곳도 없다’, ‘집안에만 갇혀 있기에는 너무 답답해서 아파트 놀이터에 나갔는데 불안해서 놀이기구는 타보지도 못하고 30분만에 들어왔다’ 등 어려움을 호소하는 글이 가득했다.

학교 휴업 중 부모의 돌봄이 필요한 연령대는 영유아부터 중1~2학년까지다. 중3이나 고등학생은 학부모의 돌봄 등에서 조금은 여유로울 수 있다. 하지만 이 연령대도 방과후 학교나 학원이 휴원하면 갈 곳이 없어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영유아기부터 중1~2 연령대는 학부모나 사회적 돌봄서비스가 절실하다. 맘까페에 올라오는 글들도 이 연령기 부모들의 하소연이 대부분이다.

학부모들은 “코로나19 사태로 한 달 가까이 학교가 휴업하고 학원마저 마음 편히 보낼 수 없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당혹스러운 현실 때문에 학부모들은 걱정과 불안이 이만저만 아니다”고 입을 모았다.

한편 정부가 전국 학교의 개학을 연기하면서 긴급돌봄을 제공하기로 했지만 실제 이용률은 매주 저조했다. 4일 기준 긴급돌봄에 참여한 초등학생은 전국에서 2만3천703명이다. 이는 전국 초등학생 272만1천484명과 비교하면 0.87%로 매우 저조하다. 유치원도 초등학교처럼 긴급돌봄에 참여한 유아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이어지면서 돌봄교실 교직원이나 다른 학생으로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옮을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학부모들은 돌봄교실에 보냈다가 아이가 코로나19나 감기 등 감염병에 옮을까 불안한 탓에 긴급돌봄도 이용하기 꺼려진다고 말한다.

/오유나 기자 pwfnews@naver.com